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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시절 기억의편린들..

2010-11-22 10:01:51, Hit : 1380

작성자 : 정은 연구소
붉은 저녁노을을 보면 마음이 황홀해집니다. 아득한 바다를 바라보면 무연해집니다. 밤 하늘의 총총한 별을 바라보면 숙연해집니다. 우리 가족의 모습을 바라보면 참 행복해집니다. 가족을 생각하는 모두의 마음이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황홀하게 느끼는 그 순간 우리는 그 모든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농경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도덕적 덕목은 ‘부지런 하라’가 지배적이었습니다. 근면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회분위기는 5․16이후 새마을운동의 흐름 속에서 산업 드라이빙 정책으로 강화되었던 시기에 조성되었습니다. 그 때  성장과정을 경험한 사람들이 지금은 부모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99%의 노력에 1%의 천재성’이라는 구호에 떠밀려 자의반 타의반으로 과업중심, 업적중심의 분위기에 편승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은 〈일 중독, 공부중독〉증후군을 보이며 그저 앞만 보고 달려야 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배경과 어우러진 우리들의 마음 밭에는 어린 시절의 풀리지 않았던 노여움, 불안함, 우울함들로 가지쳐 뻗어나간 의존심, 적개심들이 저 타이타닉의 얼음 덩어리와도 같이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불행이 인간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불행을 찾아간다고 했던가요.
우리 마음속에 살아 숨쉬는 바람들에 귀기울여 보면 사랑하면서 사랑 받고 싶은 마음, 성취하고 경쟁하면서 자신이 중요한 존재임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걸림 없이 자유롭고 싶은 마음, 그늘 없이 신나게 살고 싶은 마음들을 봅니다. 사람들마다 어린 시절의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 속에서 뱅뱅 돌고 있는 것입니다. ‘흉보면서 닮는다’ 고나 할까요.
이렇듯 마음이 잡히지 않으니 공허, 불만족, 실패, 분노 및 우울 등의 감정과 함께 자기소외 속에서 ‘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지만 실패자 같은 느낌이 든다’ 고 중얼거리며,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음으로서 느끼는 친밀감, 관대함, 존중감, 즐거움 등에 대한 느낌들을 현실적이라 믿지 않기에 일이나 공부(사회적으로 수용되는)속으로 빠져 들어가 자신을 잊으려는〈일, 공부 중독 현상〉은 〈완벽해야 된다. 강인해야 된다. 열심히 노력해야 된다. 빨리빨리 저 목표 지점을 향해 나아갈 때만이 나는 인정받고, 사랑 받고, 존중받을 수 있으리라!〉하는 기대 속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것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속한 조직 안에서, 공간 안에서 떠밀려 외도토리(왕따)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불안함이, 노여움이 실린 채 출발하는 나 아닌 나를 향한 또 하나의 시작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은 황금빛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냥 상투적으로 그렇게 표현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어린 시절은 참 좋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그들의 힘든 현재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저마다의 일상에서 잊혀지지 않는 최초의 기억들을 그 사람의 팔자라고도 하고, 운명이라고도 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열달. 그리고 젖먹고 살붙이기를 적당히 한 다음 저는 유년기를 주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살았습니다. 그 시절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설령 제가 단테의 천국에 간다고 해도 여전히 그 시절을 기억할 것입니다. 제가 자란 바닷가 마을은 작고 가난했지만 외할아버지는 관대한 분이셨습니다. 외할아버지도 가난했지만 관대함에 있어서는 부자였습니다. 외할아버지는 무엇이든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저는 그 분에게서 주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저는 외할아버지가 누구의 부탁이든 거절하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복지를 하게 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렇게 항상 외할아버지의 따뜻함 품에 안겨 어디든지 다니면서도 어린 꼬마가 늘 그리워한 것은 밀물과 썰물이 있는 바다 넘어 어머니 아버지가 계신 곳이었습니다.. 바위들, 갯벌, 물때마다 다른 표정으로 다가오는 파도소리.. 날마다 모든 것이 새로운 모습으로 꼬마 앞에 펼쳐지던 곳. 구멍 숭숭 뚫린 갯벌에서 열심히 게를 잡기도 했고, 선창가 아쩌씨들 따라 광대무변한 바다 한 가운데서 그물을 던지기도 했지만 늘...꼬마는 엄마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꼬마는 엄마 보고 싶다고 울지 않았습니다.
외가집의 넘치는 사랑 속에서도 엄마는 늘 그리움으로 남아 있었는데 보고 싶다고 울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이 눈치 저 눈치 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어느 날 연락선을 타고 친할머니와 엄마․아빠 집에 가던 날. 길 눈 어두운 친할머니 앞장서 집 찾아 낸 어린 꼬마에게 쏟아져 온 찬사와 칭찬, 대견스러움으로 둥둥 띄워 주셨던 어렴풋한 기억은 제 나이만큼 울기도 하고, 떼를 쓰기도 할 세 살 때였다고 합니다. 결코  천재일 수 없었던 어린 꼬마는 딱 한번밖에 가보지 않았던 새로 이사 간 집으로 가는 길을 어찌 기억할 수 있었겠습니까.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오로지 그 길만 떠올리며 그리워했었던 어린 마음을 헤아리는 어른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꼬마가 들었던 그 보석보다도 더 귀했던 엄마의 칭찬은 자꾸자꾸 더 높은 곳을 향하여 키를 높여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꼬마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고. 어느 날부터 ‘으응. 천재가 아니구나!’로 돌아가는 어른들의 반응은 얼마나 고통이었겠나 말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가족 안에서, 관계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도록 스스로를 격려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가끔은 햇살 잘 드는 창 앞에 앉아 하늘나라에 가 계실 부모님. 조부모님과 함께 그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곤 합니다. 그래서 마음의 아픔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에게 작은 희망의 불빛을 전하려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발 어린 자녀가 이 세상에 태어나 적어도 20세가 될 때까지는 절대로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부모의 결정으로 부모와 떨어져 지내지 않도록 당부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정당화하더라도 그것은 어린 생명에게 유배당하는 것과 같은 아픈 기억으로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경외하여라. 가보지 않은 길에서 방심하지 말고 자녀들에게 주의를 기울여라. 모든 일에서 너 자신을 지켜라(집회서 32,21-23). 모자란 것이 많고 힘겨운 일이 많아 고통스럽다 해도 마음을 나누는 지혜를 키워 가족들이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가족의 중심인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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